면책 후 신규 채무, 과연 다시 개인회생이 가능할까?
면책을 받았다는 건 기존 채무에 대해서는 더 이상 변제 의무가 없어진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후에 새로 생긴 채무는 완전히 별개의 문제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부분이 있다. "이미 한 번 개인회생을 했으니까 또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법적으로는 가능하다. 면책결정 확정일로부터 8년이 지나면 다시 개인회생을 신청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수많은 함정과 제약이 따른다. 특히 새로운 채무의 성격과 발생 경위가 매우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불가피한 채무 vs 무분별한 채무 - 법원은 어떻게 구분할까
의료비와 교육비, 그리고 생계비
법원에서 가장 관대하게 보는 것은 역시 생존과 직결된 채무들이다. 갑작스러운 질병으로 인한 의료비, 자녀 교육비, 그리고 최소한의 생계를 위한 채무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실제 사례를 하나 들어보자. A씨는 2018년 개인회생 면책을 받았다. 그런데 2022년 아내가 암 진단을 받으면서 치료비로 3억원 가까운 돈이 들어갔다. 보험금으로 일부는 충당했지만 나머지는 모두 대출과 카드빚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경우라면 법원에서도 충분히 이해할 만한 상황으로 본다.
하지만 여기서도 중요한 건 합리성이다. 같은 의료비라고 해도 꼭 필요한 치료였는지, 과도한 비급여 진료는 없었는지, 다른 대안은 검토해봤는지 등을 꼼꼼히 따진다. 특히 성형수술이나 치과 임플란트 같은 경우는 생존과 직결된 의료비로 보기 어렵다는 게 법원의 일반적인 입장이다.
사업실패는 참 애매한 영역이다. 성공하면 본인 것이고 실패하면 사회 탓? 그런 식으로 접근하면 곤란하다. 법원에서는 사업실패로 인한 채무에 대해 매우 신중하게 접근한다.
핵심은 사업계획의 합리성과 실행 과정에서의 성실성이다. 면책을 받은 사람이 새로 시작한 사업이 과연 성공 가능성이 있는 현실적인 것이었는지, 충분한 시장조사와 자금계획을 세웠는지, 경영 과정에서 개인적인 용도로 돈을 빼돌리지는 않았는지 등을 면밀히 검토한다.
투기와 도박, 그리고 사치소비 -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영역들
부동산 투기의 함정
부동산 투기로 인한 채무는 개인회생 재신청에서 가장 치명적인 요소 중 하나다. 면책을 받고 나서 "이번에는 부동산으로 대박을 내보자"는 생각으로 무리한 투자에 나서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B씨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2019년 개인회생 면책을 받은 B씨는 2021년 대출을 받아 경기도 외곽 지역 아파트를 매수했다. 당시에는 전세가격 상승으로 수익이 나는 것 같았지만, 2022년 하반기부터 전세가격이 급락하면서 매월 수백만원씩 적자가 발생했다. 결국 2년 만에 2억원 가까운 손실을 보게 되었고, 이를 메우기 위해 신용카드 현금서비스와 대부업체 대출을 받았다.
이런 경우 법원에서는 "투기적 목적의 부동산 투자로 인한 채무"로 분류하여 개인회생 재신청을 거의 인정하지 않는다.
암호화폐와 주식투자의 유혹
요즘 젊은 층에서 많이 보이는 패턴이 암호화폐나 주식 투자 실패다. 면책을 받고 나서 "이번에는 제대로 공부해서 투자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 더 큰 손실로 이어진다.
C씨는 2020년 개인회생 면책 후 암호화폐 투자에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소액으로 시작했는데 2021년 상반기 대박이 나면서 욕심이 생겼다. 신용대출과 마이너스 통장을 모두 동원해서 투자 규모를 키웠지만, 2022년 테라-루나 사태와 FTX 파산 등으로 투자금의 90% 이상을 잃었다. 결과적으로 5억원이 넘는 채무를 지게 되었지만, 법원에서는 "투기적 성격의 투자"라며 개인회생 재신청을 기각했다.
연대보증의 덫 - 선의가 낳은 비극
연대보증은 참으로 복잡하고 미묘한 문제다. 본인이 직접 소비하거나 투자한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보증을 섰다가 채무를 떠안게 되는 경우이기 때문이다.
가장 흔한 케이스는 가족의 사업자금 보증이다. 면책을 받은 후 자녀나 형제가 사업을 한다며 보증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 "이미 빚은 다 정리했으니까 이번 한 번만 도와달라"는 식으로 접근한다.
하지만 법원에서는 이런 경우에도 매우 엄격하게 본다. "왜 이미 개인회생을 경험한 사람이 또다시 보증을 섰는가"라는 질문부터 시작한다.
D씨의 사례를 보자. 2019년 면책을 받은 D씨는 2021년 아들이 치킨집을 차린다며 임대보증금과 인테리어비용 명목으로 1억5천만원의 연대보증을 섰다. 당시 아들은 대기업에 다니는 직장인이었고 사업계획도 그럴듯해 보였다. 하지만 코로나19 장기화로 매출이 부진했고, 결국 1년 만에 폐업하면서 보증채무가 고스란히 D씨에게 넘어왔다.
가족보다도 더 위험한 것이 친구나 지인의 사업 보증이다. 이미 개인회생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보증의 위험성을 충분히 알고 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증을 선 것에 대해 법원은 매우 부정적으로 본다.
생활비 대출의 악순환
소득 감소와 생계비 부족
면책을 받았다고 해서 갑자기 소득이 늘어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개인회생 과정에서 신용등급이 떨어지고 취업에도 제약이 생기면서 소득이 줄어드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생활비가 부족하면 어쩔 수 없이 대출을 받게 된다. 처음에는 "일시적으로만 빌려서 곧 갚겠다"는 생각이지만, 소득구조가 개선되지 않는 한 빚은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다.
F씨는 2020년 면책 후 택시 운전을 시작했다. 코로나19로 승객이 줄어들면서 월 소득이 200만원도 안 되었다. 가족 4명이 생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처음에는 신용카드로 생활비를 충당했지만, 한도가 꽉 차자 카드론과 현금서비스를 이용했다. 2년 만에 생활비 명목의 채무가 5천만원을 넘어섰다.
신용회복위원회와 사금융의 유혹
면책을 받은 사람들이 가장 쉽게 빠지는 함정이 바로 사금융이다. 은행에서는 대출이 어려우니까 대부업체나 불법 사금융에 손을 뻗게 된다.
재신청 성공 사례들 - 희망은 있다
물론 모든 재신청이 기각되는 건 아니다. 정당한 사유와 충분한 증빙이 있다면 법원에서도 인정해주는 경우가 있다.
H씨는 2019년 개인회생 면책을 받았다. 그런데 2022년 아들이 희귀병 진단을 받으면서 치료비로 막대한 돈이 들어갔다. 국내에서 치료가 어려워 해외 병원에서 수술을 받아야 했고, 총 치료비가 4억원에 달했다. 보험금과 의료급여로 일부는 충당했지만 나머지 2억원은 대출로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H씨는 재신청 시 상세한 의료기록과 치료비 영수증, 해외 병원의 소견서 등을 제출했다. 또한 다른 치료 방법을 검토했지만 해외 치료가 유일한 선택이었음을 입증했다. 법원에서는 "불가피한 의료비 지출"로 인정하여 개인회생을 허가했다.
I씨는 2018년 면책 후 작은 제조업체를 운영했다. 코로나19 이전까지는 순조롭게 사업이 진행되었지만, 팬데믹으로 주요 거래처들이 줄줄이 도산하면서 매출이 급감했다. 설상가상으로 대금회수도 어려워지면서 운영자금이 부족해졌다.
재신청 과정에서 I씨는 코로나19 이전의 사업실적, 팬데믹으로 인한 매출 감소 자료, 거래처 도산 현황 등을 상세히 제출했다. 법원에서는 "외부적 요인으로 인한 불가피한 사업실패"로 보아 재신청을 허가했다.